[역사의 창] 영조 임금의 팔순 잔치

#. 지난 주말, 어떤 분의 팔순잔치에 다녀왔다. 친지·친구·지인 200여명이 초대된 풍성하고 훈훈한 자리였다. 자식들의 헌사는 흐뭇했고, 손 맞잡고 춤추는 부부 모습도 도탑고 정겨웠다. 하객들은 진심으로 기뻐했고 나도 마음껏 박수를 보냈다.

잔치의 주인공은 그야말로 건·처·재·사·붕 노년 오복을 다 갖춘 것 같았다. 건(健)은 건강, 처(妻)는 배우자다. 재(財)는 적당한 경제력이고 사(事)는 일이다. 붕(朋)은 친구다. 거기에 자식들까지 남들 부러워할 만한 동량들로 키워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왔기에 저랬을까. 사회자가 소개하는 그의 인생 발자취를 들으면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첫째는 열정과 용기다. 젊을 때부터 남들 다 가는 길을 거부하며 늘 새로운 길에 도전했다. 둘째, 지금도 소년같은 호기심을 잃지 않고 있다. 셋째, 늘 공부하고 탐구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마음에 와 닿은 것은 누구보다 부지런히 베풀고 나누고 있다는 것이었다.

#. 조선 21대 임금 영조(1694~1776)도 팔순잔치를 벌였다. 조선 왕 27명의 평균 수명이 47세가 채 못 되었던 시절 유일하게 80을 넘겨 산 왕이니 당연히 했겠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워낙 사치와 허례를 멀리했던 영조였기에 평소에도 생일잔치 같은 것은 한사코 허락치 않았었다. 하지만 그 해만은 왕세손(훗날 정조)의 간곡한 요청에 마지못해 허락한 하례식이었다.

"올해로 즉위한 지 50년, 수(壽)는 여든 하나이니 이것이 누구의 은혜이겠는가. 계비(繼妃)를 맞이한 지도 열여섯 해가 되니 그 역시 하늘이 주신 복이로다…이에 잡범 이하의 죄인들을 모두 용서하고 관직에 있는 자에게는 일급씩 가자(加資)하며…전국의 90세 이상 노인에게도 일급씩 가자하고…나라의 경사가 흔치 않으므로 은혜를 널리 베풀어…백성들에게 알게 하라."(영조 50년 9월19일자 왕조실록)

이런 기록을 보면 영조는 팔순 생일이 몹시 흐뭇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장수의 축복과 51세나 어린 새 왕비를 맞아 금실 좋게 사는 기쁨을 천복으로 돌리는 겸손함은 잃지 않았다. 또한 소외된 백성들을 생각하며 특별사면에 특별 상급까지 내린 것을 보면 기쁨은 나눌수록 더 커진다는 것도 잘 알았던 것 같다.

원래 영조는 왕이 되기 전 궁궐이 아닌 사가(私家)에서 오래 살았었다. 그래서인지 백성들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신문고를 부활하여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고자 한 것이나 사치 방지를 독려하며 수시로 금주령을 내린 것, 백성들의 군역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균역법, 물난리 예방을 위한 청계천 준설 공사 등도 모두 백성을 생각하는 절절한 마음에서 나온 정책들이었다. 덕분에 영조 시대는 나라 부흥의 기틀이 다시 다져졌고 백성들의 삶 또한 전에 없이 나아졌다. 절대 권력자의 선한 의지에 따라 나라와 백성의 처지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제대로 보여준 것이다.

#. 어질고 총명하며 덕이 깊은 지도자를 갖는 것을 '백성의 홍복(洪福)'이라 한다. 조선 세종 시대에 이어 영,정조 때 백성들이 그랬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은 어떨까. 파도 파도 이어져 나오는 지난 정권 지도자들의 비리와 복마전을 보면서 홍복은커녕 여기까지 버텨온 것만 해도 다행이다 싶다.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들, 그들은 대체 뭐가 아쉬워서 그렇게 챙기려 들었을까. 무엇이 부족해서 그렇게 붙잡으려 애썼을까. 권불십년이요 화무십일홍이라 했는데 자기 욕심 비우고 조금만 더 베풀었더라면 이 지경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을.

이제 머지않아 그들도 80이 되고 70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펄펄 기 살아있고 하고 싶은 말도 많은 것 같다. 그들을 떠올리니 유쾌했던 팔순잔치 생각에 좋았던 마음이 갑자기 답답해진다.

이종호 / OC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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