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창] 우리 왕실에 시집온 외국 여인들

#. 조선 26대 임금 고종은 9남 4녀를 두었지만 넷만 장성해 살았다. 조선 마지막 왕 순종과 대한제국 황태자 영친왕 이은(1897~1970), 그의 이복형 의친왕 이강(1877~1955), 그리고 만년에 얻은 딸 덕혜옹주(1912~1989)가 그들이다.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면서 순종은 이왕(李王)으로, 영친왕도 황태자에서 이왕세자(李王世子)로 지위가 격하되었다. 조선 왕실은 멸망 직전 조약에 따라 이왕가(李王家)란 이름으로 1947년까지 존속됐다. 영친왕과 덕혜옹주는 내선일체 정책에 따라 일본인과 정략결혼을 해야 했다. 조선의 마지막 황세손으로 불리는 이구(1931~2005)는 영친왕과 일본인 부인 이방자 여사와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 미국 유학을 갔다가 1958년 뉴욕에서 미국 여성과 결혼했다.

최근 이구의 아내였던 '조선의 마지막 황세자빈' 줄리아 리가 하와이 요양원에서 94세를 일기로 쓸쓸하게 숨을 거두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파란 눈의 외국인 며느리를 탐탁지 않게 여긴 종친회에서는 후사가 없다는 점을 들어 이혼을 종용했고 결국 결혼 24년만인 1982년 두 사람은 이혼했다고 기사는 전한다. 줄리아는 2005년 남편의 장례식에 왔지만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먼발치서 장례식을 지켜보아야 했다고 한다. 기사를 읽으며 옛 왕가의 외국인 며느리를 대하는 우리네 정서가 이렇게나 각박하고 아량 없나 싶어 씁쓸했다.

#. 우리 역사에서 처음 국제결혼을 한 왕은 고구려 2대 임금 유리왕(재위 BC19~AD18)이었다. 그는 첫 왕비가 죽자 치희(雉姬)라는 중국 한나라 여인을 계비로 맞아들였다. 하지만 치희는 또 다른 계비인 하희의 시기질투를 견디다 못해 자기 나라로 돌아가 버렸다. 이에 낙심한 유리왕이 지었다는 노래가 한국 최초의 서정시가로 국어 교과서에도 실린 황조가다. '펄펄나는 저 꾀고리 /암수 서로 정답구나 /외로울 사 이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翩翩黃鳥 편편황조 /雌雄相依 자웅상의 /念我之獨 염아지독 /誰其與歸 수기여귀).'

김해 김씨의 시조인 가야 김수로왕도 왕비가 외국인이었다. 인도 아유타국에서 온 허황옥이 그 주인공인데 둘 사이엔 10명의 아들이 있었고 그중 왕비의 성을 딴 두 명이 김해 허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기록은 전한다. 고려 후기 왕들은 아예 강제로 몽골 여인을 왕비로 맞아야 했다. 원나라에 충성한다는 뜻으로 붙여진 충(忠)자 돌림의 여섯 왕과 31대 공민왕이 그들이다. 그 중 25대 충렬왕 부인은 원나라 황제 쿠빌라이의 딸로 어찌나 위세가 등등했던지 툭하면 남편에게 욕설을 퍼붓고 심지어 지팡이로 때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왕실의 이런 사정을 백성들이 몰랐을 리 없고 이런 것 또한 이민족과의 결혼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킨 한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 외국인 혐오를 뜻하는 제노포비아(xenophobia)는 낯선 사람을 경계하려는 인간의 본능적 방어기제일 수 있다. 하지만 유달리 '끼리끼리 문화'가 발달한 한국에선 그 정도가 유독 더 심한 것 같다. 조금이라도 외모가 다르거나 습속이 다른 사람은 대놓고 배척하거나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 너무 노골적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는 외국인이 200만 명이나 되고 외국인과의 결혼도 매년 2만 쌍이 넘는다는데도 여전히 그치질 않는 외국인 무시, 멸시, 천시 사건을 접할 때마다 언제쯤 이런 시대착오적 제노포비아에서 헤어나올 수 있을지 안타깝다. 그럴수록 우리 같은 이방인도 나름 활개 치며 살 수 있게 품어주는 미국의 관대함에 더 감사한 마음이 생긴다.

트럼프 집권 이후 외국 이민자에 대한 시선이 자꾸 더 깐깐해지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종호 / OC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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