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달고 살아남기

열여덟. 어찌 보면 어리고, 어찌 보면 십 대의 끝물 같고, 또 어찌 보면 욕 같은 나이. 아이와 어른의 경계선에선 열여덟은 한없이 혼란스러운 나이다. 모두가 꽃 같은 나이라고 부러워할 때도 그때는 몰랐다. 그 나이가 왜 부러움의 대상인지를.

여기 누구보다 치열한 열여덟 성장통을 겪는 소녀가 있다. 최영희 작가의 소설 <꽃 달고 살아남기>(사진)의 주인공 진아가 체감하는 열여덟은 그다지 젊지 않다. 물갈이 때를 넘긴 실내 수영장처럼 고약한 비린내와 소독약 냄새가 뒤섞인 것 같다. 쉽게 말해 한번 갈아엎을 때가 됐다는 얘기다. 이대로 무심코 어른이 되고 싶진 않다.

17년 전 지저분한 포대기에 싸여 시골 마을에 버려졌던 진아는 어느덧 도시로 유학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어릴 때 엄마와 시골 장터에 가면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말했다.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애” 진아는 엄마 치맛자락을 꼭 붙든 채 절대 울지 않았다. 그들은 진아와 엄마의 사연을 알지 못했다. 진아는 다른 마을로 가는 버스처럼 짓궂은 농담이 무심히 내 곁을 스쳐 가게 두었다. 어느 날 자신이 장터를 떠도는 꽃년이를 닮았다는 노인들의 수군거림을 엿듣게 된 진아는 생모가 궁금해졌다. 그 과정에서 뜻밖에 “니 어데 아프나?” “벵원부터 가 봐라.” 따위의 말들을 듣게 된다. 과연 진아의 친엄마는 누구이고, 날이 선 말들 속에 감춰진 비밀은 무엇일까? 진실을 궁금해하는 진아에게 마을 어른들은 모두 ‘좋게좋게’ 넘어가라고 하지만, 진아는 진정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찾아 나서기로 한다.

그래서 진아는 감히 역주행을 택한다. 미친 사람이나 한다는 역주행, 일단 사고가 났다 하면 백 퍼센트 황천길로 간다는 역주행. 사실 이건 꽃년이와 진아가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기 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다. ‘나는 누구인가? 스티커를 똑똑 떼어낸 흔적처럼, 내 인생 곳곳에 빈 자국으로만 남아 있는 그는 누구인가?’ 한 번쯤 묻고 싶었다.

거침없는 진아에게도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다. 바로 엄마다. 버려진 나를 안은 엄마, 나에게 처진 젖가슴을 내어준 엄마. 누가 뭐래도 진아는 엄마 딸이다. 지금 하려는 일이 나와 엄마의 세상을 깨뜨리는 게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다만 진실을 알고 싶을 뿐이었다.

진아가 “어디에서 어디를 거쳐 이곳까지 왔을까?내 인생에서 지워진 사람은 누구일까? 나 역시 그 사람 인생에서 지워졌을까?” 세상을 향해 묻고 스스로 답을 찾는 과정은 흥미진진하다. 세상의 음모를 파헤치겠다는 ‘엑스파일’ 마니아 인애. 오타쿠 물리 선생이 진아와 인애를 도우려다 변태로 몰린 상황 등 진아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사연으로 힘겨워하지만 서로 보듬고 다독이며 삶을 긍정한다. 그리고 진아는 되뇐다. 나와 함께 이 길을 나선 친구를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모두의 눈에 내가 돌아 보인다 해도 나는 계속 내 길을 가겠노라고.

열여덟 살 진아는 일흔여섯 살 할머니뻘 되는 엄마 밑에서 입양아로 자라 온 자신의 처지를 비하하거나 연민하지 않고 담백하게 바라보면서, 모두가 쉬쉬하는 진실을 향해 꿋꿋하게 걸어 나간다. ‘좋게좋게 넘어가라.’며 침묵을 강요하는 세상에 당찬 도전장을 내민 그들이 대견하다.

모두가 미친짓 그만하고, 길러준 엄마에게 효도나 하라고 말린다. 그런 마을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말릴 생각 하기 전에 한여름 뙤약볕보다 뜨거운 격려를 보내줄 수는 없었는냐고. 그것이 열여덟 청춘을 향한 어른의 도리가 아니던가.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리고 누가 감히 진아가 미쳤다고 말할 수 있는가. 당신은 정말로 미치지 않고서 그 시간을 통과해 왔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나 다운 것’을 고민하고 있는 열여덟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머리에 꽃을 달아도 된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평범한 삶에 나를 끼워 넣지 말고 자신만의 꽃을 달고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주인공 ‘박진아’는 혼미한 세상에서 머리 풀고 헤매는 또 다른 나인지도 모르니 말이다.

이소영/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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