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계열사 부당 지원, 오너 비리 … 국민연금 ‘블랙리스트’ 오른다

‘스튜어드십 코드’ 초안 뭘 담았나
개선 여지 없으면 명단 즉각 공개
배당 계획 수립 기업 2배로 늘려
분식회계 땐 손배 소송 근거 마련


국민연금공단. [연합뉴스]

국민연금 주주권 강화를 위한 스튜어드십 코드 초안이 나왔다. 경영 참여 논란을 최대한 줄이되 주주권을 강화한 게 특징이다. 최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 선임과 관련해 청와대 장하성 정책실장의 개입이 드러나면서 관치 인사 걱정이 커지는 상황이어서 스튜어드십 코드를 보는 눈이 곱기만 한 것은 아니다.

국민연금기금은 635조원, 이 중 운용수익이 306조원이다. 운용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국민연금이 집사가 돼 기업을 잘 감시하고 관리해 노후 자금을 지키려는 제도다. 주주총회 찬반 거수기, 풀만 뜯는 코끼리라는 조롱을 받던 국민연금이 적극적 전사로 나선다. 하지만 코끼리가 뛰면 땅이 흔들리고 흙바람이 몰아친다. 양날의 칼이다. 기업의 경영권, 나아가 지배권까지 장악하려 든다는 걱정이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스튜어드십 코드 초안에서 ‘경영 참여’로 볼 수 있는 것은 모두 뺐다. 자본시장법에서 규정한 이사 선임과 해임, 감사 후보 추천, 정관 변경 제안, 주총 소집 요구 등의 주주 제안이 그것이다. 국민연금 의사 관철을 위한 의결권 위임장 대결도 마찬가지다. 복지부 관계자는 “‘연금 사회주의’ 논란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 추후 검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점진적·단계적 추진을 강조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주주대표소송은 이번에 처음 선보인다. 오너 일가 등의 경영진이 횡령·배임을 저질러 기업에 손해가 발생했는데도 회사는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일부 소액주주가 나서지만 험난하다. 1997~2012년 판결까지 간 주주대표소송은 58건(상장사는 28건)에 불과하다. 합병·매각 과정에서 주주 자격이 바뀌면서 기각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소송에서 이기면 회사가 손해배상금을 갖고, 지면 주주들이 부담한다. 이런 이유로 섣불리 나서지 못한다. 국민연금 같은 기관투자가가 나서면 달라진다. KB자산운용이 4월 골프존을 상대로 조이마루 사업부 양수 승인 결의 취소소송을 내자 골프존이 계약을 취소했다. 스튜어드의 힘을 보여주는 예이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대기업 집단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문제가 주주 간 민사 문제다. 하지만 국내에선 민사 구제가 활성화되지 못해 공정거래위원회의 행정적 통제가 불가피하게 작용한다. 민사 구제를 활성화하는 건 대주주 견제나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당연히 도움된다”고 말했다.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도 “주주대표소송은 재계에서 걱정하는 것처럼 남용할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정 안 되면 행동에 나서는 식이어서 국민연금엔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 제도를 도입하면 인수합병·매각 등을 두고 소송 요청이 밀려들 수 있다. 논란의 소지가 있다. 국민연금은 형사재판에서 손해액이 확정돼 승소 가능성이 큰 사건에 한정할 방침이다. 또 분식회계 등의 불법행위를 저질러 손해가 발생한 경우 손해배상 소송을 적극적으로 낼 수 있게 근거와 기준을 만들 예정이다.


주요국 상장사 배당 성향

배당을 안 하는 기업도 타깃이다. 한 해 4~5개 기업에 배당정책 수립을 요구하는데 내년에는 8~10개로 늘린다. 상장사 배당 성향(순익 중 배당금의 비율)은 한국이 15.5%로 미국(S&P500) 51.8%, 프랑스 49.5%에 비해 낮다. 앞으로 배당계획 수립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명단을 적극적으로 공개한다. 국민연금은 지난 5월 남양유업과 현대그린푸드를 공개한 바 있다.

블랙리스트(중점관리 기업) 대상도 확대한다. 지금은 배당에 응하지 않을 경우에만 대상이지만 2019년부터는 횡령·배임, 계열사 부당 지원 행위, 오너 일가 사익 편취 행위 등도 해당한다. 비공개 대화를 시작해 개선하지 않으면 2020년 초 중점관리 기업으로 선정한다. 개선 여지가 없으면 즉각 기업 이름을 공개하고 공개서한 발송, 경영진 대화 등으로 이어진다. 이런 기업은 이사·사외이사·감사 선임에 반대하도록 의결권과 연계한다.

위탁 운용사를 선정할 때 스튜어드십 코드를 잘 이행하는 회사에 가점을 부여한다. 또 국민연금의 과도한 영향력 우려 해소 차원에서 위탁 운용사에 의결권 행사를 위임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상장사 주주대표소송 건수

하지만 경영 참여 여부가 칼로 무 베듯 분명하게 나뉘지 않는다. 2020년 사외이사 추천 요청이 있으면 응하겠다는 것인데, 정부는 이건 경영참여가 아니라고 해석하지만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포스코의 예에서 보듯 대표이사를 일괄적으로 주주들에게 추천 요청을 할 경우 어떻게 할지도 애매하다.

또 주주권을 강화하면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을 수 있다. 정답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권한이 커지면 책임도 그만큼 커진다. 사외이사 추천 요청에 따라 추천했는데 나중에 그 사람이 문제를 일으키면 비난받게 된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이에스더·정종훈 기자 ssshin@joongang.co.kr


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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