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향계] 뉴욕타임스가 뽑은 한인 여기자

#. 뉴욕타임스는 '워싱턴 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등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고급지의 대명사다.

논조는 대체로 진보적이다. 진보적이란 동시대의 일반적인 관념보다 조금 더 다르게 생각하고, 조금 더 앞서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쟁, 인권, 이민정책 등 주요 이슈마다 뉴욕타임스는 늘 그랬다. 그렇다고 그것만으로 최고 명성이 얻어진 것은 아니다. 사소한 듯하지만 다른 신문과 차별화된 '디테일'로도 꾸준히 신뢰를 쌓아온 게 오늘의 뉴욕타임스를 있게 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2017년 3월 4일자에 무려 164년 전 기사의 정정기사가 실렸다. 1853년 1월 20일자, 납치돼 노예로 팔렸다가 12년 만에 자유를 되찾은 흑인 솔로몬 노섭(Solomon Northup)을 소개한 기사에서 노섭이라는 이름이 잘 못 표기돼 있었던 것을 바로잡은 것이다.

또 하나는 올해 2018년 3월 28일자에 실린 유관순 열사(1902~1920) 부고기사다. 뉴욕타임스가 왜 뜬금없이 거의 100년 전 숨진 동방의 한 여성 부고기사를 실었을까. 뉴욕타임스의 대답은 이랬다. "그동안 우리 부고기사는 저명한 백인남성 위주였다. 이를 반성하는 차원에서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세계 각국 여성들도 다루기로 했다."

#. 남과 달리 생각하고 남과 달리 행동하는 뉴욕타임스의 '진보성'은 디지털에서도 드러난다. 뉴욕타임스는 2011년 유력 언론사로는 가장 먼저 온라인 유료화에 나섰다. 그 결과 지금은 온라인 유료 구독자가 200만 명을 넘어섰다. 종이신문 구독자의 3배가 넘는 수치다. 수익도 온라인 구독 매출이 인쇄물 광고 매출을 웃돈다.

인터넷 공간의 모든 콘텐트는 공짜라는 인식이 만연해 있다. 뉴스도 정보도 모두가 공짜로 본다. 그런 환경에서 어떻게 돈과 시간을 기꺼이 내겠다는 독자를 확보할 수 있었을까. 답은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독보적인 저널리즘' 전략이었다. 2017년 발표된 자체 보고서에 그 방법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첫째, 경쟁사와 차이가 미미한 기사는 쓰지 않는다. 둘째, 시급하지 않은 기획기사와 칼럼은 쓰지 않는다. 셋째, 명쾌하지 못하고 난해하며 원론적인 글은 쓰지 않는다. 넷째, 사진이나 동영상, 표로 간단히 전달할 수 있는 내용을 긴 글로 풀어쓰지 않는다.

#. 뉴욕타임스의 남다른 면은 이번 주 내내 논란이 된 여기자 채용 건에서도 확인이 된다. 내용은 이렇다. 최근 첨단 기술분야 수석기자로 사라 정(30)이라는 한인 여성을 한 명 뽑았다. 그런데 이 기자가 과거 백인 남성들을 골라 비난한 글을 자주 SNS에 올린 것이 드러났다. 이를 두고 경쟁 언론사들이 인종차별주의자를 고용했다며 비난을 쏟아냈다. 일부 네티즌들도 가세하며 채용취소 요구가 빗발쳤다.

뉴욕타임스는 의연했다. "사회적 소수자였던 기자가 과거 백인 남성들로부터 받은 견디기 힘들 정도의 인종차별에 '미러링'으로 대응한 것일 뿐"이라며 채용 철회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미러링이란 특정 혐오 행위에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피해자가 자신이 당한 방식 그대로 가해자에게 돌려주는 행위를 말한다. 물론 이 기자의 대응 방식이 옳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본인도 사과를 했다. 하지만 부당한 인종차별에 그렇게라도 맞선 것은 남다른 용기를 요하는 일이었다. 뉴욕타임스는 그 점에 오히려 더 점수를 준 것이리라.

많은 사람들이 신문의 위기를 말한다. 이럴 때 뉴욕타임스의 어제와 오늘은 많은 신문들에게 밤길의 작은 등불이 되고 있다. 그리고 조금만 눈 여겨 보면 그 등을 밝히는 기름은 진실 앞의 용기, 작은 것에 대한 관심, 그리고 끊임없는 자기 혁신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미국의 변방, 한글 신문이 분투하며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이런 신문도 있기 때문이다.

이종호 /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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