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TALK] 보는 것과 듣는 것

2011년 한 월간지의 요청으로 클래식 음악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3년 후 당시 문화담당기자의 제안으로 본 지면으로 글을 기고하게 되었다. 2015년 말부터는 한국의 대표적인 공연예술지에 뉴욕의 클래식 음악계를 소개하고 중요 뉴스나 인물들을 만나 인터뷰 기사를 송고하는 일을 겸하게 되었고, 가끔씩 일간지에도 특별 기고를 할 만큼 글을 쓸 기회가 늘어났다.

아이러니하게도 필자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다. 아직 맞춤법이나 띄어쓰기에 자신이 없어하는 수준이다 보니 활자로 박혀 돌아온 원고를 읽다 뜨악했던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다행히 주변에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솔직한 조언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의지가 된다. 글을 써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그들의 의견을 들어왔는데,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추리면 세 가지로 정리가 된다.

좋은 글은 독서에서 시작된다. 많이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작가들이나 기자들이 책을 손에서 떼지 못하는 이유이다. 한국에서 오랜 세월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지인은 매년 100권 읽기를 목표로 세운다. 연초에는 읽고 싶은 책들을 중심으로 읽다가 연말이 다가오면 길이가 짧은 시집을 집중해서 읽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책을 많이 접하는 사람들의 글과 눈은 분명 다르다.

출퇴근길에 느끼는 생각들을 소셜미디어에 짧은 글로 연재하고 있는 등단 작가인 또 다른 지인은, 글을 쓰지 않으면 절대 늘지 않는다고 했다. 많이 쓰는 사람에게는 장사가 없다는 말이다. 그 지인 역시 한참을 안 쓰다 글을 쓸 때면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며,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글쓰기가 발전할 것이라고 격려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처럼 전문가 뺨치는 글 솜씨로 정평이 난 인물도 있다. 자신의 칼럼을 출판한 경험도 있는 그는, 쓰는 것보다 오히려 고치는 과정이 더 길고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완전히 자연스럽게 흘러갈 때까지 읽고 고치기를 지루하게 반복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마치 피아노 앞에서 고뇌하며 작품과 씨름하는 그의 모습이 교차되었다.

클래식 음악 칼럼에서 다룰 수 있는 이야기는 제한적이다. 문학이나 미술, 혹은 패션만 하더라도 활자나 지면을 통해 직접 구현이 가능하겠지만 음악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들어보지 못한 음악에 대해서 글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무의미한 일이다. 베토벤이 지휘했던 그의 9번 교향곡의 초연 무대에서 관중들의 환호와 박수를 듣지 못해 어리둥절해 있었다는 이야기나, 출판사에 보낸 원본 악보 외에는 초고나 스케치조차 남기지 않고 모두 불태워 버렸던 결벽증의 끝판왕 브람스에 관한 일화를 통해서는 정작 그들의 음악을 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종종 '클래식TALK'을 잘 보고 있다는 분을 만난다. 쓰면 누군가는 읽는다는 사실이 실감되는 순간이다. 필자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의외로 소박(?)하다. 독자들이 결국 음악을 듣도록 소개하는 것이다. 음반이나 음원을 구입해 전설적인 유명 연주나, 최근의 트렌디한 해석도 접해보라는 고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유튜브에 '모차르트'만 검색해도 다양한 선택이 기다리고 있다. 모차르트는 아마도 가장 호불호가 없는 작곡가에 속하기 때문에 진입 문턱도 거의 없다.

믿음은 '듣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성서의 교훈은 음악에서 그대로 적용된다. 어린 시절 반 지하 단칸방에서 테이프가 늘어나도록 들었던 음악이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하트 무직'이였다. 클래식 음악에 흥미가 없었을 시기인데 3악장에 꽂혀 몇 번이나 돌려 들었을까. 나중에 음악을 전공하며 접했던 그와 관련된 서적과 기사, 그리고 작품을 분석하고 논문을 공부하며 알게 된 모든 지식들은 어쩌면 모차르트와는 동떨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때만큼 모차르트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느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김동민 / 뉴욕클래시컬플레이어스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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