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따발총 총살직전 '멈추라우'에 살아나다

1950년 6월 25일(일요일). 새벽 4시, 38'선 전역에서 북괴의 총포와 쏘련제 탱크의 궤도 소리에 놀라 아침이 깨고 먼동이 트며, 민족상쟁의 남침이 시작되었다.

전쟁의 시작 불과 3일만에 수도 서울은 비참하게도 북괴군에 빼앗기고(6월28일) 대전으로 옮겨갔다. 28일밤 2시경에는 거대한 폭발음과 섬광이 30여분 지속되며 서울의 관문이었던 3개로 나뉘어진 철교가 폭파되었고 곳곳에서 총소리가 요란하다.

28일 오후부터는 소강상태가 이어지고 거리에 낫서른 군복을 입은 자들이 눈에 띄었다. 팔에 붉은 완장을 하고 다니는 민간인들도 보인다. 29일 오전에 노고산 뒷쪽 창천 국민학교 부근에서 나는 거대한 포 소리가 간간히 들려온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인민군들이 마포강 도강을 하려고 영등포일대와 여의도 비행장을 향해 포격을 한다고 했다. 오후부터는 거리에 왕래하는 사람의 숫자가 많아지며 며칠동안 집안에만 있어 밖으로 몰려 나온듯 어머니도 텃밭에서 채소를 뽑아 우물가로 가시며 3살 배기 여동생을 보라고 하신다.
늘 하던데로 나무로 만든 네바퀴 수레에 동생을 태우고 거리로 나섰고 얼마안가 바퀴 하나가 빠져 나갔다. 길옆의 풀숲을 보니 평소 보지못한 검은 전화 선이 보였다.

잡아당겨보니 줄이 길어서 필요한만치 돌 위에 얹어서 끊어 바퀴를 동여매고 다시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인민군 4명이 급작스레 내앞으로 다가오더니 바퀴에 감긴 줄을 풀어서 보고서는 이북 사투리로 욕을 하며 발과 주먹으로 차고 때리면서 총 끝으로 밀며 한참을 정신없이 끌려 가서 그들의 선임하사에게 끊어진 전화선을 보이면서 보고를 맞추었다.

선임하사에게서 돌아오는 말은 '네레 반동 갓나새끼 총살 하라우' 한마디였다. 곧 옆에 있는 자들에게 끌려 낮은 언덕밑으로 가서 언덕을 뒤로하고 서게했다. 따발총을 들고있는 자가 '네레 반동 간나새끼 국방군 스파이 니깨 전화 선을 끊어 포를 네레 못쏘게 했으니 인민의 이름으로 즉결처분 한이껜 그리 알라우' 하면서 총알을 장전 총구를 나의 가슴과 얼굴을 향하는 것이었다.

놀랄 사이도 없이 따발총의 총구가 대포알 구멍 만금 늘어 낫다가 다시 바늘구멍 만큼 줄어 들며 노란색 안개로 변하였다를 반복했다.

많은 매를 맏고 14살 미소년에게 닥친 상황이고 보면 이 순간을 면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을 수 없고 마지막 마음속으로 아이고 하나님 만을 부르며 체념하고 눈을 감았다 1초 2초가 지났는데 귀에 총소리가 아닌 "멈추라우, 멈추라우야" 하는 소리가 들려 오는듯 하여 눈을 떠서 소리나는 곳을 보니 깨끗한 정복을 입은 젊은 인민군 장교가 나의 앞으로 급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나를 옆에 있는 나무밑으로 가서 무릎을 끓어 앉으라고 하더니 자기가 묻는 말에 솔직히 답을하면 용서한다고 말하며 묻기를 시작했다. 언제 어디서 누가 왜 시켰나? 나이와 가족관계 집의위치 가족중에 군인 공무원 유무 등이었다. 일반 대화하듯 겁박없이 몇번 반복하는 질문도 있었다.

집이 300미터 정도 된다고 하니, 그간 풀밭에 버려진채 혼자서 울다 지쳐 반죽엄이 된 동생을 등에 업고서 집으로 가자고 하면서 뒤를 따르는데 장교와 사병 2명 이었다.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내가 말할 사이도 없이 놀란 어머니에게 누가 있는가 물은다음 대답할 사이도 없이 집 안에 구두를 신고서 샅샅이 뒤진 다음 아버지의 행방을 묻고서야 끝이났다.

2명의 사병에게 밖에서 기다리라고 말한 다음에 어머니에게 오늘 일어난일에 대해서 간단한 말을 하고 자기들이 떠난 후에나 밖에 나올 수 있다고 하면서 "내래 평양에 동무와 같은 동생이 있쑤다" 하면서 엷은 미소를 지으며 울퉁불퉁 부어오른 나의 머리를 만저주면서 아프지 하면서 다시한번 밖에 나오지 말라우 하면서 갔다.

내가 끊었던 전화선은 마포강 뚝의 포병 관측소에서 (한강 도강을 위해) 노고산동 창천국민학교내 포부대의 포 사격 지시를 하는 중요한 전화선이었음을 알았다.

독자 김춘회 / 버지니아주 애난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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