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에어] '민식이 법'과 '헌준이 법'

결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고가 난 곳은 충남 아산 한 초등학교 앞이다. 지난 9월 11일 9살 민식이는 동생 민후의 손을 붙잡고 어린이 보호구역 건널목을 건너다 과속차량에 치여 세상을 떠났다. 사고 차량은 민식이를 치고 나서 3m를 더 질주한 다음에야 겨우 멈춰섰다. 민식이와 함께 있던 동생은 머리에 타박상을 입었다. 이른바 ‘스쿨존’으로 정해진 곳이다. 그러나 이 곳에는 신호등도 과속 단속 카메라도 없었다. 가해자는 귀가조치 됐다. 민식이 가족은 즐거워야 할 추석 연휴 아이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민식이가 없는 상상도 못해 보았을 일상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민식이 아빠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살아있는 형아가 보고 싶다며 우는 둘째를 달래다 보면 억장이 무너진다고 했다. 잠든 아이들을 보며 ‘저기에 우리 민식이가 있어야 하는데, 내 새끼 어디 갔나’하며 울다 지쳐 잠이 든다고…. 허망하게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감히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민식이 부모는 그러나 슬픔 속에 멈춰 있지만은 않았다. 다시는 민식이처럼 세상을 떠나는 아이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민식이 법’ 입법을 위해 세상에 나섰다. ‘민식이 법’은 어린이 보호구역 내에 과속방지 카메라와 신호등을 설치하고 스쿨존 내에서 사고를 낸 가해자에게 가중처벌을 해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식이 부모는 더 이상 제2의 민식이가 생겨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으로 시민들의 서명을 받고 인터뷰를 하고 있다. 법을 꼭 통과시켜 나중에 한스럽지 않게 민식이 곁에 가고 싶다는 것이 부부의 바람이다. 한국시간 27일 방송된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에서 ‘민식이 법’에 대한 내용이 다뤄졌다. 손석희 앵커는 “그렇게 쓰이라고 지어준 이름은 아니다”라고 한 민식이 엄마 박초희씨의 마음을 전하며 "행복한 의미로만 사용하고 싶었으나 부모는 아이 이름 뒤에 '법'이란 단어를 붙이는 것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법안의 빠른 통과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고, 여야 모두 법안 처리에 공감대를 이뤘다. 그러나 '민식이 법'은 현재 처리가 불투명해진 상태다. 자유한국당이 한국시간 29일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카드를 꺼내들며 본회의에 상정된 199개 법안의 발이 묶였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본회의를 개의해 민식이 법을 통과시킨 다음 필리버스터의 기회를 달라"며 "다만 국회의장이 선거법을 직권상정 안 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고 조건을 걸었다. 필리버스터 신청 소식에 민식이 부모를 포함한 어린이 안전 관련법 통과를 요구해오던 피해 어린이 부모들은 "왜 아이들을 협상 카드로 쓰냐"며 강하게 항의했다.

민식이 아빠 김태양씨는 "이미 억울하게 죽은 아이들을 두 번 죽였다“라며 "선거법과 아이들의 법안을 바꾸는 것, 그게 과연 사람으로서 할 짓이냐?"라고 비판했다.

4년 전, 스쿨버스 질식사 취재를 위해 만난 헌준이 가족을 잊지 못한다. 발달 장애를 가지고 있던 헌준이는 2015년 9월 스쿨버스 안에 7시간 넘게 방치돼 있다가 결국 숨을 거뒀다. 학생들이 다 내렸는지 제대로 보지않은 운전사의 불찰이 낳은 비극이다.

이후 천사와 같던 아들을 잃은 헌준이 부모는 일명 '이헌준 법'을 만들어 냈다. 스쿨버스 운전사가 시동을 끄면 알람이 울리도록 해 차에서 내리지 않은 아이들이 있는지 확인하도록 한 법이다. 법안이 주지사 서명을 받아 낸 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헌준이 엄마는 아들이 하늘에서 안아주는 것 같다며 기뻐했다. 헌준이 부모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세상 밖으로 나왔을 민식이 아빠 엄마도 하루빨리 소망을 이룰 수 있길 바란다.

부소현 / JTBC LA특파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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