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한·미 정상회담 성과를 위한 고언

교조적 평화 몰입이 문제
미·중 사이 입장 정립하고
북핵 대처 현실에 맞추며
도발 가능성도 대비해야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





정부의 임기가 1년 남았다. 그동안의 외교에 좋은 평점을 주기는 어렵다. 주력했던 한반도 평화의 성과도 미진하다. 지금에 이르게 된 연유를 들자면 첫째로 정부가 미·중 경쟁, 한·미 동맹 등 큰 구도의 역학과 별개로 한반도 평화에만 몰입했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한반도 평화구상도 변화하는 현실에 맞춰 적용하지 않고 교조적으로 운용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문제로 돌아가 보자. 사실 냉전종식 이래 아시아 지역에는 세력재편이 진행 중이다. 소련이 물러간 자리를 중국이 메웠다. 중국이 부상하자 미국의 견제가 날카로워졌다. 이제 미·중 경쟁은 미·소 냉전처럼 전반적이고 압도적인 외적환경이 되었다.

지금 미국과 중국은 각기 자신이 주도하는 다자협력체로 역내 국가를 끌어들이고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AIIB),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주도했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 쿼드(Quad), 첨단 기술 패권이나 인프라 건설에 대처하는 다자연대를 추진했다.

이런 메가 트렌드 속에서 각국은 대응에 부심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변화의 큰 흐름을 회피하려는 몇 안 되는 나라다. 특히 한국은 동맹인 미국이 주도하는 움직임에는 예외 없이 참여를 피했다. 그러면서도 중국이 주도하는 일대일로, AIIB, RCEP에 참여했다.

한국이 미국의 구상을 회피하는 전가의 보도는 공식요청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미국이 사드를 배치 하고자 할 때도 그랬다. 요청, 검토, 결정이 없었다는 3불을 대책인 양 내세웠다. 박근혜 정부의 행태다. 현 정부도 인태 전략이나 Quad에 대해 미국의 공식요청이 없었다고 한다. 이처럼 민감한 사안을 회피하려는 행태는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한국외교의 고질이다. 이런 식이라면 적군이 진격 해와도 공식 통보가 없으므로 검토도, 결정도 않겠다고 할 판이다.

한국의 행보가 이러니 심도 있는 한·미 공조가 생길 수 없다. 그 정도의 한·미 공조를 갖고는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기 어렵다.

두 번째 문제를 보면, 한국의 역대정부는 한반도 관련 구상을 교조적으로 다뤄왔다. 이것도 한국외교의 고질이다. 비핵 평화 3000,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통일 대박,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이 그 예이다. 이들은 선거공약인데, 북한은 물론 호응하는 나라가 없는데도 무슨 경전이라도 되는 듯 원래 구상대로 밀고 나갔다. 지금 그 정책 명칭을 다시 들으면 우스갯거리를 넘어 비극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지금 정부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라는 정책을 내놓았다. 이 또한 경직되게 운영되고 있다. 하노이 결렬로 상황이 바뀌고, 트럼프가 바이든으로 교체되어도 정부는 2018년의 대응논리를 고집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이 정책도 전 정권의 정책과 비슷한 운명에 처할 수 있다.

우리 쪽 사정이 이런 가운데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검토가 완료되었다. 기본접근이 트럼프 식과 다르다. 그간 우리는 트럼프와 협의 해오던 논리를 갖고 바이든 측을 설득해 왔다. 비중 있게 반영되었을 가능성은 작다. 정부는 반영되었다고 주장하겠지만, 정작 중요한 평가기준은 북한의 반응이다. 벌써 북한의 반발 기류가 엿보인다.

이제 곧 바이든 대통령과의 첫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여기서 협의가 잘 되지 않으면 정부의 외교성과는 더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껏 드러난 문제를 감안할 때 우려가 없지 않다. 그래서 몇 마디 거들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정상회담을 통해 임기 말 외교에 전기를 마련하려면 첫째, 미·중 사이에서 적절한 대응 방도를 마련하여 성공적인 정상회담 여건을 조성해야한다. 미·중 대립 시대에 모호한 대처로 미국의 불만을 키워놓고, 우리 혼자 한반도 평화에 몰입한들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

둘째, 한반도 문제에 대한 우리의 대응논리를 변화된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한다. 이미 트럼프라는 주연 배우가 낙마하고 바이든이라는 배우가 주연으로 등장했다. 바이든은 대북정책 재검토를 마쳤다. 전과 다른 대본을 들고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대본을 고쳐야한다. 2018~19년의 대본을 그대로 쓰려 해서는 안 된다. 바이든의 새 대본에 우리 대본이 반영되어 있다고 우겨서도 안 된다. 아전인수 식 인식은 패착을 부른다.

셋째, 북한의 도발로 상황이 급전직하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개연성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정부 내에는 이런 가능성 자체를 터부시하는 기류가 있다. 이 또한 교조적이고 무책임한 것이다.

북한이 도발을 하면 국제 분위기는 급속히 악화될 것이다. 사전대비가 없으면 한국은 속수무책으로 상황에 휩쓸려 갈 것이다. 만일 한국이 분위기에 역행하여 과거 대본을 반복한다면 고립될 것이다. 어떤 경우든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도 박한 평가를 면치 못할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은 이 모든 것의 향배가 정해지는 계기다. 촛불 민심으로 세워진 정부의 외교는 다르다는 점을 보여줄 마지막 기회이다.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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